본문 바로가기
회고

야구선수에서 개발자가 되기까지

by 이곳느 2021. 12. 28.
반응형
이 글은 제 예전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

딱 100번째 게시글 기념 이기 때문에

야구선수로서 살아온 지난 날들과 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과 편입, 개발자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기록하고 몇년 후가 되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글이다.

최근 인턴과정을 수행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런데 가끔 회의감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꽉 채울때도 많았었고, 그냥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었다.

결론적으로는 인턴과정을 끝내고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인턴과정을 되돌아 보면 조금 더 열심히 해볼걸..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약 13년간 운동선수 생활을 마치고 난뒤 나는 야구 말고는 딱히 '나' 라는 사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하고싶어 했던 개발자에 도전하고자 편입을 결정하게 되었다.

편입을 결정하고 나서는 편하게 놀아본 적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이유는 물론 '우물 안 개구리' 가 되고싶지 않아서이다. 운동선수 시절에는 나름 효자였던것 같은데,, 요즘엔 공부하느라 가족끼리 제대로된 여행한번 간 적이 없던 것 같다. 하지만 개발을 배우기로 결심한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쳤고 안될 것이 없어 보였다. 물론 현재까지 그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생각보다 모르는게 많고 생각보다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어 보일 때 회의감이 들곤 한다.

이 글은 개발공부를 시작하고 정확히 3년이 흐른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번아웃이 오려고 할 때 이 글을 읽으며 리마인드 하기 위해 작성하는 글이다.

13년의 운동선수 생활 (TMI 많으니 스킵 권장)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을 꾸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딱히 튀는 선수도 아니였고 그렇게 못하는 선수도 아니였다. 하지만 달리기 하나는 빠르다고 감독님께 칭찬을 많이 받았었고 나이가 차며 점점 타격실력이 늘어가는 선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형적인 달리기 빠르고 타격 좀 할줄아는 1번타자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나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대상자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지명받기를 간절하게 원했지만, 그 정도 실력은 아니였는지 지명받지 못했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안한건 아니고) 왜냐하면 누가봐도 잘하는 선수가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 생활은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일정이 조금 다르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는 수업도 듣지 않으며, 듣더라도 1교시 혹은 오전 수업만 받고 운동에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밖에 나갈때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닌다. 왜냐하면 다들 머리를 빡빡 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26살이라는 나이지만 머리를 기른지는 5년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대학 야구부로 진학하게 되었고, 나는 4년동안 열심히 할 생각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시한번 새로운 환경에서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운동부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낮은 학년때가 제일 힘들었다. 심부름 부터 시작해서 선배들 빨래 등등.. 내가 스스로 해야하는 몫 외에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았어서 그것이 엄청 큰 스트레스였다. 비유하자면 대학 과제를 모두 끝내고 내가 하고싶었던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조별과제가 생겨서 진행하지 못하는..? 이런 나의 '성장' 을막는 요소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 생활을 하던 중,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속되어 오던 어깨부상이 심해져서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생각했다. '재활은 1년정도 걸릴텐데..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군대를 가고자 마음을 먹었다.(야구부는 보통 대학 졸업을 한 후에 입대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렇게 감독님께 찾아가서 군대를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린 후 팀을 이탈하게 되었다. 사실 운동선수가 대학 중간에 군대를 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특별한 케이스이다.

사회복무요원

나는 선수시절에 다쳤던 어깨가 문제가 되어서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했다. 공기업에서 2년동안 사회복무를 하며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공기업인 만큼 조직은 매우 수직적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 수직적인 생활이 조직 최 말단(사실 조직 구성원도 아니다)인 나에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평생을 수직적인 곳에 있다보니 나름 적응도 잘했고 직원 분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냈던 것 같다.

평생을 수업도 안듣고 운동만 해왔기 때문에 서류처리 및 조직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것 조차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소집해제를 한 6개월 남겨두고, 야구선수로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자 친구 한명과 퇴근후에 열심히 운동하며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끝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팀으로

사회복무요원 생활이 끝나고, 대학 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솔직히 복귀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서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단 1주일만에 무너지게 되었다.

퇴근후에 3~4시간이지만 정말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다른 선수들도 '정말 열심히' 해왔다는 것이였다.

첫날 운동때 사회복무때 1학년이였던 친구들이 3학년이 되어 크게 늘어난 기량을 보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었다. 비슷한 기량을 바라는 게 욕심이였다.

정말 큰 문제는 1주일만에 어깨가 다시 아파지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퇴근후에 했던 운동때는 괜찮았는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첫날에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해선 프로가 될수 없었고 프로의 벽은 내 생각보다 많이 높았다.

재도전

팀 합류 한달여 만에 13년간 해왔던 운동을 그만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잠깐동안 '뭐먹고 살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상에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많으니 오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야구를 살려서 코치를 하려고도 했으나 야구 선수가 되고싶었던 것이지 코치가 하고싶었던 것은 아니였다. 그래서 지도자에 대한 고민은 일치감치 그만뒀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어릴때부터 참 컴퓨터를 좋아했었다. 코딩 경험이 있던것은 아니지만, 컴퓨터를 좋아하여 중학교 선수 시절에도 따로 공부하여 한글, PPT 자격증을 취득했었다. 그렇게 관련 직무를 알아보던 중 개발이라는 직군을 알게되었다.

개발자가 되는 방법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였다. 이미 대학에 있지만 편입을 하여 컴퓨터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게 가능했다. 다음날 야구를 팀에 야구를 포기하겠다고 얘기한 후에 다음날 '윤성우의 열혈 C 프로그래밍' 책을 구매해서 무작정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 7일 13년 야구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순간이였다.

대학 생활

2019년 3월 대학 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과로 편입학하게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대학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잡아본 적 없는 펜에 익숙해지는것, 시험기간에 밤을 새는것 등등 모든것이 어려움 그 자체였다.

편입학 전에 C언어는 공부를 이미 마치고 온뒤라서 C언어 진도를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C언어는 되게 재밌게 했던 과목 중 하나라 즐겁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양한 기초 강의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학기는 편입 첫학기였다.

첫학기 과목중에는 수학도 아니라는 '이산수학' 과목 수강 중 교수님께서 이런말씀을 하셨다. "2차 방정식 같은 것들은 따로 설명 안하겠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다. 이것을 따로 설명해주는게 오히려 더 민망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일단 나는 몰랐기 때문에 설명이 너무 간절했다. 편입생 동기들,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물어물어가며 어찌저찌 수업을 들을수는 있었다. 나는 3학년 1학기를 통째로 그 과목에 몰빵을 했었고, 이것조차 모르면 나중에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겠다 라는 생각때문에 다른 전공인 1학년 과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해당 과목은 A0 라는 준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나머지 과목은 C만 4개를 받았다 ㅎㅎ 3점은 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은 2점대 성적표로 돌아왔고 나는 그때 멘붕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고싶지가 않았다.

그때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외부활동이 학기중에 많으니 방학때 기초 과목들을 미리 공부하고 학기중엔 외부활동에 더 힘을쓰는 방향으로 학습했던 것 같다.

정보보호 연구실

거의 입학과 동시에 어딘가 소속되고 싶다는 마음에 학과 내 연구실에 들어갔다.

졸업때 까지 이 연구실에 몸담았었고, 이 연구실에서는 뭔가 개발적인 측면을 배운것은 사실 없다. 암호학 세미나, 공모전 참가 등을 주로 하는 연구실이다. 졸업을 한다면 이력서에 다양한 활동들을 기재할 수 있는것이 이점이다.

여기서 약 2년간 활동하면서 딱히 큰 불만은 없었지만 연구실의 스타일이 개인의 성장보다는 단체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곳이였고 소속감을 강하게 주는 좋은 곳이였다. 하지만 막학기 끝 무렵쯤 소속감에 매몰되어 나 자신의 성장이 더디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회장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회장으로 뽑혀서 20년도 학회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왕 뽑힌거 열심히 활동해보자! 생각했지만..

코로나님께서 타이밍 좋게 터져줘서 정말,, 정말정말정말 힘들었다.. 일이 많아서 힘든게 아니라 딱히 할 수 있는게 없어서 힘들었다. 나름 노력도 해봤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것들이 많았고 결국 큰 성과없이 졸업해야 했다.

공부 스타일

사실 강의를 엄청 열심히 듣는 스타일은 아니였다. 성격 상 등록금을 본전뽑는 것은 강의도 강의지만 대학생 신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외부활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외부활동에 지원을 했었고, 합격도 하고 불합격도 하며 외부활동에 힘을 많이 썼다. (물론 연구실에서 한것도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험기간에 몰아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이게 엄청난 합리화라는 걸 알고있지만.. 시험기간에 며칠밤을 새는게 그렇게 공부가 잘되어서 지금까지도 뭔가를 해야할때 그 방법을 쓰고있다.

결론적으로 3학년 1학기 2.94 → 3.85 → 3.89 → 4.17 성적으로 대학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하락세가 없었다는게 가장 마음에 든다.

성장에 대한 목마름

성장에 대한 목마름은 개발자를 희망한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하는 기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얼만큼이나 성장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동선수 생활을 했던 경력때문인지는 몰라도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이 나를 괴롭게 했었다. 그래서 성장에 집착했던것 같다.

아래는 성장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실천했던 것들이다.

개발 블로그

내가 아주 존경하는 선배가 공개적으로 학습하라 라는 글을 추천해주셨다. 내용은 링크를 달아놓았으니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보고 급하게 블로그를 만들고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서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물론 플랫폼을 옮겨다니느라 대다수의 글들을 날려먹었지만 게시글의 갯수를 채우기 위한 목적은 아니였으니 딱히 상관없다.

나의 지식을 공개적인 장소 어딘가에 게시한다면 누구라도 잘못된 정보를 적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신경써서 글을 작성할 것이고 그렇기에 같은 지식을 알고있다고 하더라도 1% ~ 2% 는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1% 가 미래를 바꾼다고 믿기때문에 블로그 포스팅은 꾸준히(사실 요즘엔 못했지만..) 하려고 한다.

개발자 유튜브 시청

내가 좋아하는 방법중 하나다. 특정 유튜버를 언급하기엔 부담스러우니(호불호가 많이 나뉩니다..!) 남기지 않겠다.
여기서 내가말하는 개발자 유튜브란 교육을 해주는 유튜버라기 보단 개발자 직무에 대한 이야기 혹은 패러다임 및 썰들을 풀어주는 유튜브다.

이러한 유튜브를 자주 보다보면 은근히 쏠쏠하게 얻는 지식들이 많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듣다보면 재밌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각 진영의 싸움(Ex: FP VS OOP)이나 입장들을 보며 싸움구경을 하기위해 모르는 지식들을 공부하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선후배 및 동기에게 멘토링 요청 (성장 구걸..)

모르는 지식이 있을 때 선배든 후배든 동기든 방어적이지 않은 자세로 물어보고 성장하자!

그 사람이 엄청 깊숙히 몰라도 상관없다. 그럼 같이 고민하며 싱글코어가 듀얼코어가 되는 마법을 볼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누며 얻어지는 부수적인 지식들은 덤이다.

실제로 편입학한 학기에 같이듣는 학생 대부분이 1학년이였고 나는 수학지식을 구걸하려 다녔다. 효과를 많이 보았고, 관심있는 분야에 종사하는 선배가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서 배우는것을 즐겼다. 물론 상대방의 생산성이 낮아진다. 그래서 지갑을 자주열었다.

성장이라는게 주관적이라 얼만큼 성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감이 생겼다면 성장하고 있는게 아닐까?

개발자 Github TIL, 회고 염탐

전여친 인스타 염탐할 시간에 다른 개발자 TIL 및 회고를 염탐하자.

TIL을 보고 회고를 본다고 기술적으로 크게 얻는것은 없을지 몰라도, TIL이나 회고 꾸준히 쓰는 사람한테 배울점이 없기는 힘들다.

성장하는 마인드셋을 배우고, 열린 마인드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방어적일때 마음편한것은 잠깐이지만 공격적일때 얻는 성장은 평생간다고 생각한다.

추가적으로 나는 개발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과 힘들더라도 대화를 많이 하려고 했다. 배울점이 많다면 배우기 위해 많이 대화를 했고 배울점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개발유튜브 얘기를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개발 이야기에서 재미를 찾을수 있었다.

일단 해보기

대학시절 아주 위험하다 느낀게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이다. 자세한 내용은 나의 개발용 인스타(@min_s_dev)에 포스팅 해놓았다. 광고아님

핫한 기술들의 키워드를 외우고 개념만 얕고 넓게 알고있는것이 엄청 위험하다는 내용이다. 이유는 알긴 알지만 결국 해본건 아니기 때문에 안다고 하기도 어렵고 모른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럴때 모른다고 한다면 좀 낫지만 안다고 해도 문제다.

그래서 모르는 기술을 습득할 때 CRUD게시판이나 적어도 회원가입/로그인 기능은 꼭 만들어 보았다.

이 정도만 만들어도 프레임워크의 흐름이나 구조를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현재

그래서 지금은 잘하냐? 절대아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모르는게 많고 여전히 성장에 목마르다. 위에 나열한 방법들은 대학때 써먹던 방법이고 개발자가 된 지금은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있는 회사에서는 GraphQL로 이루어진 서버 개발 및 유지보수 업무를 진행하고 있고, 자율성이 상당히 높은 회사다. 그렇기에 성장에 대해 할애할 시간이 많을수도 있지만 더욱 더 나 자신에게 매몰될 수 있는 위험이 혼재한다. 다행히 아주 좋은 CTO님 및 동료를 만나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현재에 안주한다면 결국 성장에는 한계점이 찾아올 것이다.

은퇴하는 날까지 나 자신이 성장에 대해 목마르길 바래본다.

반응형